도미닉 다닝거 대표
한국 패키징 테크 혁신을 이끄는 패커티브의 여정

오스트리아를 떠나 한국으로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12살 때 비엔나에서 처음 코드를 작성한 뒤, 17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ERP와 CRM 시스템을 구축하며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2013년에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처음 이곳으로 왔습니다. 곧 깨달았죠. 한국은 소비자 기준이 매우 높고, 디자인 수준은 세계적이며,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속도로 움직이는 나라라는 것을요. 저에게 한국은 단순한 제2의 고향이 아니라, 혁신을 시험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인 한국에서 패키징 디지털화를 성공시킬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확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ERP와 워크플로우 시스템 개발 경험이 패커티브 설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거의 20년 동안 B2B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양한 고객과 일했습니다. 초창기에는 프로젝트 관리나 고객 커뮤니케이션, 납품 프로세스에 대한 가이드조차 없어 모든 것을 직접 배우며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경험이 지금의 패커티브를 만드는 데 큰 기반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패키징을 단순한 인쇄 산업이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워크플로우의 문제’로 봤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플랫폼 버전은 전자상거래 프런트엔드부터 ERP 백엔드, 실시간 가격 엔진, 3D 디자인 툴까지 모두 직접 개발했습니다. ERP 자동화와 워크플로우 로직을 시스템 핵심에 통합함으로써, 디자인·가격·생산이 하나의 흐름으로 실시간 연결되는 완전한 소프트웨어 기반 패키징 환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수백만 개의 패키지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대표님의 리더십 원칙은 무엇인가요?
저의 리더십은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주도적 오너십(Proactive Ownership) — 구성원에게 진정한 주인의식을 부여해야 스스로 성장하고 책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둘째, 급진적 명확성(Radical Clarity) — 명확하고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합니다.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결국 진심 어린 명확성이 신뢰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겸손과 자기 인식(Humility with Self-Awareness) — 창업자는 언제나 배우고 적응해야 합니다. 겸손과 자기 인식이 없으면 신뢰도, 혁신도 불가능하죠.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실행과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패커티브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12개국 하우스 운영을 지원하며 웹사이트, 차량 브랜딩, 공급망 관리, 자산 관리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실패한 영역이 바로 ‘패키징’이었습니다.
당시 패키징 공급업체들은 대부분 오프라인 견적에 의존했고, 최소 주문 수량이 너무 높아 신생 브랜드는 시장 진입조차 어려웠습니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견적 프로세스가 산업 전반을 가로막고 있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패키징은 가장 디지털화가 뒤처진 산업 중 하나’라는 것을요.
그래서 패커티브는 “누구나 빠르고 쉽게 고품질 패키징을 주문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품질만큼은 사람이 직접 마지막 검수를 진행합니다.

 

패커티브는 기존 패키징 기업이나 다른 스타트업과 어떻게 다릅니까?
초기에는 소량 주문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기업 고객까지 확장했습니다. 고객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속도’입니다.
우리는 영업 사이클과 공급망 관리를 끊임없이 자동화하며, 백엔드에서 AI가 대부분의 프로세스를 처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체 ERP 백본을 개발했고, 덕분에 유연성과 통제력을 모두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업체보다 최대 600배 빠른 납기 속도를 실현했고, 공장을 직접 보유하지 않아도 한국 내 15개 협력사와 함께 고품질 패키징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AI 기반 디자인 연구개발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혁신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를 꼽는다면요?

  •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시장 중 하나인 한국에서 3,5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고객으로 확보

  • 최근 4년간 450만 개 이상의 패키지 생산

  • 2025년 9월, 일본 미레이즈(Miraise) 주도, 미국 스트롱벤처스(Strong Ventures) 및 일본 전략적 투자사와 함께 Pre-A 브리지 라운드 투자 유치 성공

  • 비(非)한국인 창업자로는 최초로 TIPS 프로그램 선정, 외국인 창업자의 가능성을 증명

 

패커티브의 기술 스택은 어떻게 설계되었나요?
처음부터 저는 패커티브를 ‘패키징 회사’가 아닌 ‘기술 스타트업’으로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포장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그 뒤에서 작동하는 공급망의 속도와 효율성을 혁신하는 기업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 자체 ERP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크기, 재질, 인쇄 방식 등 모든 변수에 따라 자동으로 실시간 견적을 계산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고객은 즉시 정확한 견적을 받을 수 있고, 우리는 전통적인 업체보다 훨씬 높은 효율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DYP.ai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DYP.ai는 2024년 4월 론칭한 패키징 전용 생성형 AI 도구입니다. 이전까지는 모든 디자인 파일을 사람이 직접 검수해 인쇄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그 과정을 AI가 대신합니다. 사용자는 간단한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실제 인쇄용 파일을 바로 생성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를 준수성 검토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의 박스 디자인을 입력하면 AI가 자동으로 튜브, 라벨, 테이프 등 모든 형식으로 변환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수천 개의 SKU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와 생산 현장을 결합할 때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요?
문제는 기술 그 자체보다 ‘문화’에도 있습니다. 여전히 생산 현장에서는 팩스가 발주서의 주요 수단으로 쓰이고, “패키징 단가는 자동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의사결정자들이 많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Midjourney나 ChatGPT 같은 AI 도구들이 창의성을 보여줬지만, 실제 인쇄 가능한 수준의 디자인으로 발전하기에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AI가 수백만 달러 규모의 리스크가 걸린 생산 환경에서도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수십 년간 변화에 저항해온 산업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패키징 산업 기회는 얼마나 크다고 보시나요?
글로벌 패키징 산업 규모는 이미 1조 달러 이상이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패키징 인쇄 부문만 해도 4천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6천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동시에 ERP 및 워크플로우 자동화 시장은 2032년까지 1,7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됩니다.
패커티브는 이 두 시장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상자를 파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있습니다. 이 시장은 패키징을 넘어서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회입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수백만 개 패키지를 생산하기까지 얻은 교훈이 있다면요?
처음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하고 실행하려 했지만, 그 사고방식이야말로 스타트업을 죽이는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빠르게 출시하고, 즉시 테스트하고, 실시간으로 개선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지난 4년은 제게 많은 스트레스와 동시에 깊은 통찰을 남겼습니다. 문제를 다르게 보는 시각, 그것이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패커티브의 접근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공장을 직접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소재 선택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더 큰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우리는 비도포지(uncoated paper)와 재활용 소재 사용을 적극 확대하고 있으며, 단순한 ‘친환경’ 마케팅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순환 가능한 소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말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 가능한 재질과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향후 3~5년 내 패커티브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저는 패커티브가 단순한 마켓플레이스가 아니라 ‘패키징 산업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현재는 브랜드가 빠르게 디자인하고 주문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앞으로는 소프트웨어가 실제 생산 라인을 제어하는 단계, 즉 물리적 AI(Physical AI)로 진화할 것입니다. 그 시점이 진정한 산업 혁신의 순간이 될 것이며, 우리는 이미 그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패키징 산업에서 AI의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요?
패키징은 전 세계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장 더딘 산업 중 하나로, 석유 산업 바로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단계를 건너뛸 기회가 있습니다. 생성형 AI, 에이전틱(Agentic) AI, 그리고 물리적 AI를 가장 먼저 도입하는 기업들이 이 산업의 미래를 주도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패커티브 플랫폼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AI가 자동으로 생산 단계를 설계하고, 디자인 오류를 수정하며,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 기계를 작동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온디맨드 생산의 정의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South Summit Korea 2025에 참가하게 된 이유와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유럽 출신이자 한국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유럽은 제게 가치관과 디자인 감각, 개방성을 주었고, 한국은 속도와 안정성, 회복력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 꿈은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를 보는 것입니다. 재능 있는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에 와서 환영받고, 대륙 간 확장이 자연스러운 세상. 동시에, 저는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어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하길 바랍니다. South Summit Korea는 바로 그 두 대륙을 잇는 플랫폼입니다. 외국인 창업자가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두 시장을 연결하는 협력과 투자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패커티브가 한국의 혁신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와 연결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 강력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미국 내 10억 달러 이상 가치의 기업 중 55%가 이민자에 의해 창업되었습니다. 진정한 글로벌화는 스스로 글로벌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나라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이 글로벌 코리아를 꿈꾼다면, 먼저 세계 인재를 포용하고 외국인 창업자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패커티브의 역할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문화와 지식이 교차하는 생태계 구축,
둘째, 한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기업 모델을 만드는 것.
한국을 본사로 두고도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South Summit에서 어떤 파트너십과 투자자를 기대하고 있나요?
이번 행사를 통해 단순히 회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참가자들과 배우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특히 유럽 자본이 한국으로 유입되고, 한국 자본이 국내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구조에 대해 투자자들과 논의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파트너십은 자본 그 이상입니다. 시장 간 장기 협력을 열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전통 산업을 디지털화하려는 창업자들에게 조언한다면요?
가장 중요한 건 버티는 힘,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입니다. 전통 산업의 저항, 문화와 언어 장벽, 차별, 잘못된 채용, 경험 부족, 도움을 구하지 못한 실수들…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건 자동화할 수 없다”, “옛 방식이 유일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과정에서 저항은 당연한 일입니다.
속도, 비용 절감, 신뢰 — 어느 하나로든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는 결국 버티는 자의 것입니다.

 

패커티브 성장의 전환점이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두 번의 중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2020년, 패커티브가 아직 아이디어 단계였을 때입니다. 저는 모든 시간을 투자해 회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급여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입국청에서 유령회사 운영 혐의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조사가 8개월간 이어졌고, 은행 계좌가 정지되어 개인 자금조차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외국인 창업자가 이런 불합리한 장벽을 겪지 않도록 돕겠다고요.
두 번째는 런칭 6개월 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시점이었습니다. 첫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히 상황을 설명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미닉, 우리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신에게 투자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투자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에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의 확신이 오늘의 패커티브를 있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