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 등산로 너클살인 한 달…"4명 모여도 무서워 못 가"

디오타임스 승인 2023.09.17 09:05 의견 0

신림 등산로 너클살인 한 달…"4명 모여도 무서워 못 가"
주민 즐겨 찾던 등산로, 이젠 초입만 발길…"동네 분위기 완전히 변해"

경찰 순찰 종료·구청 3개월 순찰…CCTV 추가 설치는 여전히 '준비 중'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최윤선 기자 = "그 뒤로는 어휴, 말도 꺼내기 싫어. 우리는 4명이서 모여 다니는데도 무서워서 못 올라가."(70대 주민 정모씨)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7일로 꼬박 한 달이 됐지만 일대 주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범행이 벌어진 목골산 등지에 한시적으로 가동됐던 경찰의 순찰이 종료되면서 주민들 얼굴에는 아쉽고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등산로 내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추진했던 CCTV 추가 설치는 아직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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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위해 2인 이상 동반 산행 권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 "평일 대낮에도 붐볐는데…동네 분위기 완전히 바뀌어"

범행 후 한달이 흘렀지만 주민들은 운동하고 산책하며 일상적으로 찾던 공간을 사실상 잃어버린 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관악산생태공원을 찾아가 본 14일 오후 주민들은 등산로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등산로와 연결된 공원 입구 근처에만 머물렀다.

공원 입구엔 '안전을 위하여 2인 이상 동반 산행 바랍니다. 인적이 드문 샛길보다 이용객이 많은 정식 등산로를 이용합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등산로 초입 벤치에 앉아있던 관악구 미성동 주민 김모(70)씨는 "예전에는 매일 같이 운동 삼아 왔었는데 이제 무서워서 위쪽으로는 안 간다"며 "CCTV도 설치 안 됐고 언제 어디서 이상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했다.

김씨는 "전에는 난곡동 사람들도 산에 많이 왔는데 이제 안 온다"면서 "여기가 미성동, 난곡동, 구로구 독산동 등 여러 동이랑 연결돼 있고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 더 무섭다"고도 했다.

일행인 정씨도 "원래는 여기서 나물 뜯고 앉아서 밥 먹고 그러는데 이제 사람들이 안 온다. 젊은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면서 "나이 든 사람들도 아래에서만 논다. 원래 이 시간이면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 4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공원은 평일 대낮에도 공원 내 기구로 운동을 하거나 정자에 앉아 담소하는 주민들로 붐볐다고 한다. 등산로 역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 찾았다.

하루 3시간 '아동지킴이'로 인근 초등학교와 놀이터 순찰을 하는 전직 경찰관 이모(74)씨는 "사건 이후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어르신들은 공원 초입 정자 쪽이나 운동기구 앞에서만 노시고 주말에 많이 오던 젊은 친구들은 안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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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사건 발생한 목골산 순찰하는 경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산악순찰대 운영 종료…안전지킴이도 일단 3개월 운영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1일부터 시범 운영했던 '관악 둘레길 산악순찰대'는 이달 15일 자로 활동을 종료했다.

산악순찰대는 관악경찰서 산하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지원받은 경찰관 1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2인 1조로 목골산을 포함한 관악구 내 둘레길 약 14㎞ 구간을 순찰해왔다.

산악순찰대의 빈 자리는 관악구청에서 이달 4일부터 운영 중인 '숲길 안전지킴이'가 채우고 있다.

현재 45명으로 구성된 숲길 안전지킴이는 주야간 2인 1조로 관악산과 연결된 거점 공원 8곳 등 일대를 순찰한다. 모두 전직 경찰관이다.

안전지킴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공원과 산책로, 등산로를 돌면서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나 범죄 현장을 목격했을 때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숲길 안전지킴이 역시 산악순찰대처럼 한시적으로 운영하다가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숲길 안전지킴이는) 우선 3개월 한시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규모를 줄여서 운영하든지 해야 할 텐데 아직 확실하지 않다.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CCTV 설치도 아직이다.

관악구청은 약 1억원의 예산을 들여 범행 장소 인근 후미진 곳에 6대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예산과 관련해 내부 절차가 끝나지 않아 설치 작업에 착수하지는 못했다. 구청은 연내 반드시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6대의 추가 설치가 얼마나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순찰이 종료된 데다 CCTV 설치 작업도 더딘 탓에 주민들의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생태공원 초입에서 만난 미성동 주민 방모(81)씨는 "경찰들이 순찰하는 거 보면 마음이 놓였는데 끝난다더라"며 "CCTV도 없고 아직은 좀 무서운데 순찰은 계속 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의자 최윤종은 지난 12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지난달 17일 목골산 등산로에서 A씨를 성폭행하려 철제 너클을 낀 주먹으로 무차별 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CCTV가 없는 곳을 범행 장소로 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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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명복을 빌며 [연합뉴스 자료사진]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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